명란젓 이야기

미국에서 명란젓이 너무 먹고싶었던, 명란젓에 대한 혹은 나의 찌질함에 관한 이야기.

 

명란젓의 짭쪼름함이 미친듯이 당길때가 있다. 

내가 뉴저지에서 거주할 때의 얘기다. 

한여름 하늘은 시리게 푸르렀고, 햇빛은 뜨겁게 쏟아져 내렸다. 

업무 쉬는시간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얗고 몽글몽글한 구름들을 세다가 문득 먹고싶어졌다. 

 

"명란젓"

 

나는 어릴 때부터 명란젓을 아주 좋아했는데, 명태알로 만든것이라면 다 좋아했다. 

알탕도 좋아해서 부모님이 자주 알탕집에 데리고 다녀 주셨었다.

내가 하도 알탕알탕 해서 부모님은 골탕 꽤나 먹으셨을 것이다.

 

명태알은 알탕으로 얼큰하고 고소하게 먹어도 맛있었고, 

짭쪼름하게 명란젓으로 먹어도 밥 한공기 뚝딱 하는 별미다.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명란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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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 

익숙한 표지판이 보이자 버스에 내려서, 바로 앞에 있는 한인 마트로 촐랑 촐랑 들어갔다. 

어디보자... 떡... 장아찌.. 김치...

어! 명란젓 있다! 근데 가격이...

 

명란젓 세 조각이 들어가 있는 통 하나는 16불. 

지금 생각하면 한번쯤 낼 만 하지만 나는 당시 거진 최저시급을 받고 있었고,

주머니는 텅텅 비었있었다. 

 

"에잇 내가 명란젓하나 못 사먹나" 

 

하고 호기롭게 명란젓을 들었다가... 놨다. 

이성 인간이 치고 들어왔다. 

 

"이거 거대한 명란젓 세개 며칠만에 먹을 수 있는게 아닌데, 이렇게 비싸게 사서 다 먹지도 못하면 어쩌려구"

"일주일 내내 명란젓만 먹으려구???"

 

하... 

 

이성인간에 약한 나란인간은 욕구를 억누르고 

집에 그냥 갔다. 

 

그런데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나는 명란젓, 

명란젓은 이상하게 따로 파는 곳도 많이 없다. 

음식점에 가서 명란젓을 주 메뉴로 파는 곳도 없구. 

 

다음날 아침,

시간 좀 지나면 사라질줄 알았던 나의 명란젓 욕심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너무나도 먹고싶었다. 

이 정도로 먹고싶으면 그냥 사먹자! 하고 큰맘 들고 쌈짓돈을 들고 나가서,

한 팩에 고작 3개, 귀한 명란젓님들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명란젓 하나때문에 벌벌 떤 어릴 적 내가 너무 귀엽다

 

그렇게 귀하게 얻어온 명란젓을 먹기 위해 흰쌀밥을 짓고 

따끈따끈한 흰쌀밥과 명란젓 조금을 껍질에서 살살 긁어서 함께 후후 뜨신김을 뱉어가며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먹고싶어 했던 게 무색하게 한개를 먹고

"으엑짜, 더이상 못먹어." 하고는, 

음식들을 미지근하게 보관해주던 내 냉장고에 2일정도 넣어놨다 어느날 보니 다 상했더랬다.

 

속상해하며 썩은 명란젓을 쓰래기통에 털어넣으며, 다신 이런 사치 안부릴거야! 하던 내가 생각난다.

 

지금은 명란젓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게 되었고 

가격보단 냉장고에 쓸데 없이 자리 차지 하진 않을지 먼저 걱정하는 나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된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명란젓을 먹으면 문득

사서 고생한 나의 이십대, 눈부신 햇빛과 변두리 뉴욕 생활을 버무린 맛이 난다.

알탕의 알을 허겁지겁 입에 우겨넣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눈빛도 한스푼 들어가 있다.

 

그 맛은 달달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이기에 아련하기도 하다.